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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6-08-12

조회수17,502

제목

필리핀 가사도우미, 저출산·고령화 해법 될까?

돈·부모 희생 없으면 맞벌이가정 육아 힘들어
기재부 "경제부담 줄어들면 출산율 올라갈 것"
고용부 "저임금 도우미 수입, 내국인 일자리 위협"

【세종=뉴시스】이예슬 기자

주말을 끼고 홍콩 여행을 다녀온다면 어렵지 않게 필리핀 등지에서 온 가사도우미들이 공원이나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큰 건물 근처에

무리를 이뤄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당수의 홍콩 가정은 필리핀 출신 입주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데,

일요일 하루는 휴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온 이들이다. 이들은 홍콩 여성들의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일등공신으로 여겨진다.

홍콩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버텨낼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필리핀은 실업률이 높아 자국 국민의 해외 취업을 장려하면서

양국 정부의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져 만들어낸 결과다.
 

홍콩 뿐 아니라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들에서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출신 가사도우미를 들이는 일은 흔하다.

일본도 특구를 지정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허용하고 있다. 올해 말엔 도쿄도 등 10개 권역까지 허용될 방침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유입은 기재부가 저출산·고령화 관련 정책을 고민할 때마다 만지작거리는 카드다.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도

검토됐다가 결과적으론 포함되지 않았다. 부처간 갑론을박이 심해서다.

◇소득 적거나 부모 도움 없으면 맞벌이 어려워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고령화가 진행되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재정수요는 늘어나는데 이를 지탱할 미래 세대의 인구는

줄어드는 것은 이미 예측 가능한 미래가 됐다.

그러나 혼자 벌어서는 가정 경제를 이끌어가기가 어렵고, 부부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림 및 육아를 감당하기 힘들다보니

소시민에게 출산과 육아는 축복이 아닌 짐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아이를 낳았더라도 일·가정 양립이 힘든 사회 구조상 부부 중 한 명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두고 양육에 전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보통 여성이 될 확률이 높다. '경력단절여성'의 문제가 여기서 생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만 14세 이하 자녀(막내 기준)를 둔 한국 기혼여성의 고용률은 60.8%로 관련통계가 있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7개국 중 20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가정 구성원의 의지와는 별개로 맞벌이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가사 및 육아도우미의 월급을 감당할 수 있느냐',

혹은 '부모님의 손을 빌려 아이를 키울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즉, 고소득자라서 200만원 이상의 도우미 월급을 지불할 수 있거나

연로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어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게다가 높은 도우미 인건비는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하기도 한다. 현재 내국인 입주 육아도우미는 200만원 이상,

중국 동포도 150~20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이마저도 공급이 부족해 실제 부르는 값은 훌쩍 올라가는 것이 현실이란 게 수요자들의 전언이다.

이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 가정의 경우 여성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어 부의 축적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지는 반면

비용이 부담스러운 가정은 한 쪽이 직장을 그만둬 경력이 끊긴다. 그 후 재취업을 하더라도 원래의 소득이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받게 된다.

◇저임금 가사도우미, 저출산·고령화 실질적 해법 될 수 있어

기재부는 외국인 도우미를 합법화해 육아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경력단절여성의 수를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저출산의 원인은 여러가지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라고 볼 수 있다"며 "

외국인 가사·육아도우미의 허용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해외 파견 기회가 많은 기재부 관료들은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본 기회가 많다보니 '필리핀 내니(nanny·유모) 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기재부 출신으로 홍콩 재경관(2007~2010년)을 지낸 최광해 국제통화기금(IMF) 대리이사가 대표적이다.

최 이사는 2011년 발간한 저서 '금융제국, 홍콩'을 통해 홍콩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수입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 이사는 책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고학력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여성 인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성 노동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수입이야말로 최적의 대안"이라며 "이는 닥쳐오는 고령화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대안"이라고 적었다.

그는 또 "우리나라도 고용허가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수입을 검토한 적이 있었지만 사회적 위화감이 생길 것을 우려해 포기했다"며 "

그러나 고소득 가정에선 얼마가 됐건 가사도우미를 쓸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 가격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을때

가장 혜택을 받는 것은 많지 않은 수입을 올리는 중산층 가정"이라고 주장했다.

◇중하층 월급 낮춰 중산층 가정 살린다?…반대 만만찮아

정부가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합법화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추진이 어려운 이유는 부처 간 이견이 극명하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는 한화 60~70만원선에서 가사도우미 비용이 형성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처럼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수입될 경우 내국인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학력 수준이 높지 않아 전문직에 종사할 수 없는 여성들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공급하더라도 실제 이들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지는 미지수라는 게 고용부의 의견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한 달에 60~70만원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해도 이들이 사업장에 취직하면 두 배 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가정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며 "불법체류자를 양성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 역시 "외국의 경우에도 가사도우미는 여성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먼저"라며 반대의 입장을 전했다.

사실 기재부 내에서도 외국인 도우미 허용 문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재부의 한 서기관급 공무원은 "기재부 여성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도우미 도입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젊은 층이 상당수인 '필리핀 내니'의 경우 가정불화를 염려하는 면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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