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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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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베이비시터와 다를게 뭔가?


주간동아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나는 7세, 4세 딸 둘을 둔 워킹맘이다. 양가가 모두 지방에 있어 제3자의 도움 없이는 맞벌이를 할 수가 없다. 2017년 6월 복직을 앞두고 베이비시터를 구하고자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린 곳은 구청 건강가정지원센터였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는 건강가정지원센터 16곳,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8곳, 비전공유협동조합 1곳 등 총 25곳에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늘의 별 따기, 정부 아이돌보미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하원시간인 오후 2~3시부터 퇴근시간인 오후 7~8시까지 시간제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했다. 담당자는 “당장은 어렵다”는 말부터 했다.

“그 시간대 수요가 제일 많아요. 그렇다고 종일제 돌봄서비스 대기가 짧은 건 아니에요. 둘 다 기존 이용자가 ‘서비스 이용 중단’을 해야 매칭해줄 수 있어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초창기에는 대기자를 받았는데 공급에 비해 수요가 지나치게 많고, 대기 중에 다른 곳에서 사람을 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대기를 따로 받지 않아요. 매월 신청하는 시스템인데 운이 좋으면 같은 동에 거주하는 아이돌보미 선생님과 스케줄이 딱 맞아 바로 투입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복불복이에요.”


2013년 첫아이를 낳고 시간제 돌봄서비스를 신청했을 때는 사업 초창기라 어렵지 않게 매칭됐는데, 4년 만에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다. 첫째아이를 맡아줬던 아이돌보미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둘째아이도 정부 아이돌봄 서비스에서 구하고 싶었다.

 

첫째아이를 담당한 아이돌보미는 정년퇴임을 5년여 앞둔 공무원의 아내였다. 딸 셋을 모두 간호사로 키우고 50대 후반에 적적하게 지내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아이돌보미가 됐다고 했다. 그는 “갓난아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딸들이 결혼 전이라 손주가 없다. 남는 시간에 용돈벌이하는 셈치고 일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9개월이던 딸아이를 그는 정말 친손주처럼 돌봐줬고, 돌 즈음엔 뽀로로 변기를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자꾸 안아주면 보는 사람만 힘드니 내려놓으라”고 말려도 아이가 예쁘다며 잠들 때까지 포대기에 싸 업어주던 분이었다.

하지만 둘째아이 때는 수요가 더욱 늘어난 데다 이사한 서초구에는 아이돌보미가 100여 명밖에 없어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인구직사이트 ‘시터넷’을 통해 조선족 입주 베이비시터를 구했다. 몇 차례 면접 끝에 채용한 50대 초반의 시터는 F4비자(연장 없이 취업 가능) 소유자였고, 10년 경력자로 노하우가 있었으며, 한국 음식도 곧잘 만드는 분이었다.

조선족 베이비시터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많아 폐쇄회로(CC)TV를 거실에 설치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그가 동의해줬다. 직장에서 틈틈이 영상을 확인할 때면 시터는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했고, 아이들은 각자 노는 장면만 보여 안심할 수 있었다. 또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TV를 보지 않게 하고, 내게 과자는 사두지 말 것을 주문하며, 첫째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하는 등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더욱 신뢰가 갔다. 이 밖에 장보기, 세탁물 맡기기 같은 부탁도 들어줘 만족감은 점점 커졌다. 2년이 지난 현재, 둘째아이는 주말에 훈육을 할 때면 ‘이모~’ 하고 없는 이모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애착관계가 잘 형성됐다.

워킹맘의 선택지는 다양하지 않다. 친정이나 시댁이 가까워 자녀를 돌봐주는 게 1순위고, 여의치 않으면 2순위로 다른 사람 손에 맡긴다. 설령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긴다 해도 오후 4~5시 하원 이후부터 퇴근 전까지 돌봐줄 사람은 필요하기 마련이다.

조선족 시터보다 나을 것 없다는 평가도


제일 믿을 만한 곳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다.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는 2012년 ‘아이돌봄 지원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돼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시간제 돌봄, 종일제 돌봄 등 원하는 서비스를 신청하고, 이용 후 아이행복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비용은 종류에 따라 각각 시간당 9650원, 1만2550원으로 나뉜다(표1 참조).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가구는 꾸준히 늘어 2014년 5만4362가구에서 2018년 6만4591가구로 18.8% 증가했다(그래프 참조). 그사이 아이돌보미 수는 2014년 1만7208명에서 2018년 2만3675명으로 37.5% 늘었다(표2 참조). 2018년 아이돌보미 수 대비 이용 가구 수가 3배가량 많은데 집계되지 않은 대기 수요까지 합하면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쟁률이 어마어마해 언감생심 이용을 꿈꿀 수조차 없다. 3순위로 시터넷, 이모넷, 단디헬퍼 등 온라인 구인구직사이트를 통해 한국인 출퇴근 시터나 조선족 입주 시터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가운데 4월 1일 ‘정부 아이돌봄 서비스가 최고’라는 인식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금천구의 한 아이돌보미가 16개월 된 남자아이를 3개월 동안 학대한 사실이 드러난 것. 피해 아이의 아버지 정용주 씨가 청와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CCTV로 촬영한 아이돌보미의 아동 학대 영상을 올려 이를 본 많은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온라인 맘카페는 며칠 동안 분노로 들끓었다. ‘저항할 수 없는 아기가 느꼈을 공포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없다’ ‘아이가 음식을 거부한다고 손찌검을 하는 아이돌보미는 다시 일할 수 없도록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정부 아이돌보미는 신원이 확실하고 교육받은 인력이라는 장점이 있는데, 어떻게 사설 인력소개소보다 못할 수 있느냐’ 등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정부 아이돌보미를 구하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싹 사라졌다. 오히려 비용은 더 저렴하고 아이들 케어, 집안일, 요리 등 살림까지 도맡아주는 지금의 조선족 베이비시터가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비슷한 처지인 한 워킹맘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들 둘을 유치원에 보내며 조선족 베이비시터를 쓰는 김모(42) 씨는 “정부 아이돌보미는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가사를 포함하면 비용이 더 올라간다. 하루 11~12시간 종일제(가사 제외)가 210만~230만 원이다. 야근이 잦고 가계 부담도 커 조선족 입주 베이비시터를 쓰는데, 같은 값에 살림까지 맡아주니 오히려 속 편하게 일한다. 또 이번 금천구 아이돌보미 아동 학대 사건을 보니 정부가 안전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 낳을 생각 사라져”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어 아이 낳기가 무섭다는 반응도 나온다. 육아휴직 중인 이모(39) 씨는 “첫째가 무척 예뻐 복직 후 1년 뒤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금천구 아이돌보미 아동 학대 사건 이후 남편과 둘째는 절대 낳지 말자고 합의했다. 양가 모두 지방이라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지금도 동동거리는데, 둘째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현재로서는 사설업체 베이비시터 이외에 선택지가 없고, 고용하더라도 방마다 CCTV를 설치해 아동 학대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 아이돌봄 서비스 신청 창구는 온라인 홈페이지로 일원화돼 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기관은 전국 222군데로 산발적이다.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135곳, 건강가정지원센터 25곳, 다문화가족지원센터 13곳, 여성단체여성인력 10곳, 지방자치단체 직영 10곳 등이다(표3 참조).

각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모집 공고를 통해 아이돌보미를 채용한다. 특별한 자격 요건은 없다. 범죄 이력만 없으면 누구나 신청하고 교육을 받은 직후 투입된다. 또 미성년자만 아니면 나이와 상관없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다.

선발된 아이돌보미는 1개월 동안 80시간 교육기간을 거친 뒤 바로 투입된다. 교육 내용은 아이돌보미의 역할과 직업윤리, 아이의 안전 및 건강관리, 응급처치, 아이의 발달 단계별 이해 및 지도방법, 양성평등·성인지 교육과 10시간 이상 실습을 포함한다. 이 가운데 아동학대 예방교육은 2시간이다.

아이돌보미로 투입된 후에도 보수교육 과정 8시간을 이수해야 하지만 10개 교육 내용 가운데 ‘아동인권과 아동학대 예방교육’의 시간 비율은 많아봐야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측은 이에 대해 "1시간 이상 교육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외에 여성가족부나 각 센터에서 아이돌보미의 보육 상태를 돌봄 가정으로 찾아가 직접 확인하거나, 아동 학대 의심 신고를 받는 등의 후속조치는 지금까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는 금천구 아이돌보미 아동 학대 사건 이후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했다. 4월 8일부터 6월 30일까지 ‘아이돌봄 아동학대 실태점검 특별신고’ 창구를 개설해 운영하기로 한 것. 과거 사례를 포함해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모든 사례에 대해 신고를 받는다. 이와 함께 전체 아이돌보미를 대상으로 긴급 아동학대예방 특별교육을 기관별로 4월 말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지역 센터별로 현장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는 4월 9일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231가구를 빠짐없이 방문해 아이돌보미 활동을 점검한다고 밝혔다.

근본 해결책 마련 절실

여성가족부는 4월 8일부터 6월 30일까지 ‘아이돌봄 아동학대 실태점검 특별신고’ 창구를 개설해 운영한다. 사진은 4월 10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이돌봄사업 정책개선 방안 당정간담회’에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금천구 피해 아이의 아버지 정씨는 교육 강화뿐 아니라 CCTV 의무 설치 지원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4월 9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송희경, 신보라 의원 주최로 열린 ‘아이돌보미 영유아폭행 사건, 내 아이는 안전합니까’ 토론회에서 정씨는 “아이돌보미들이 감시당하는 게 싫다는 이유로 CCTV 의무 설치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아이돌보미도 억울한 경우 영상을 보고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CCTV 설치는 의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까지 공급보다 수요가 많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던 이들의 고충도 토로했다. 정씨는 “대부분 맞벌이 부모에게 아이돌봄 서비스가 절실한데 아이돌보미의 이력을 알 수 없고, 부모가 임의로 취소하거나 늦게 신청하면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아예 신청조차 못 하는 페널티가 부과되는 등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 이렇다 보니 건강가정지원센터와 아이돌보미는 완전한 ‘갑’이 되고 부모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딸을 유치원에 보내며 시간제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최모(38) 씨는 “이용자는 정부 아이돌보미가 배정된 순간부터 철저히 ‘을’이 된다. 아이돌보미가 우리 집을 마음에 들어 하고, 내 아이를 좋아할 수 있도록 맞춰야 하기 때문에 CCTV를 설치하거나 활동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관리·감독을 센터에서 해주지 않으면 사설업체를 통해 시터를 채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번 금천구 아이돌보미 아동 학대 사건으로 정부 아이돌봄 서비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관리 주체는 여성가족부가 아닌 건강가정지원센터다. 해당 센터는 육아 지원을 전문으로 하기보다 가족에 대한 전반적인 서비스를 주관하는 곳이다. 교육도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외부 교육기관에 의뢰해 진행한다. 관리 시스템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준호 여성가족부 가족문화과 사무관은 “4월 안에 회의를 열어 CCTV 설치 지원 여부, 모니터링 개선, 사업 추진체계 공공성 강화 방안 등 여러 안건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8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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